지극히 사적인 기준으로 선정하는 21세기 첫 10년의 한국영화 10편
감평이 아니라 목록 선정이니까 좀 사적으로 가도 괜찮겠지요. 순위는 없고 개봉한 순서대로입니다.


[짝패(2006)] : [부당거래]와 [짝패] 사이에서 굉장히 많이 고민했어요. 비교해보면 일장일단이 있는 작품이니까요. 고민 끝에 [짝패]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간단합니다. 류승완 감독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부당거래] 같은 걸작을 만들 날은 몇 번이고 다시 찾아오리라 생각합니다. 지지자로서 믿어 의심치 않아요(바라건대 차기작이 그랬으면 좋겠군요). 하지만 류승완이 직접 구르고 뛰고 날면서 발차기를 하는 액션 영화를 다시 만들긴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선정했습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어요. 단순 비교는 힘들겠지만, [부당거래]가 류승완의 [란(亂)]이라고 한다면 [짝패]는 류승완의 [그림자 무사(影武者)]("카게무샤")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란]보다 [그림자 무사]를 더 좋아합니다.


[구타유발자들(2006)] : 폭력이란 이름의 유산은 어떻게 상속되는가. 폭력은 왜 해소되거나 사라지지 않고 자꾸만 제 몸집을 불리는가. [세븐 데이즈] 한 트럭을 갖다 줘도 [구타유발자들]의 삼겹살 한 점과 바꾸진 않을 겁니다.


[괴물(2006)] : 가장 최근에 [괴물]을 다시 봤을 때, 이 영화는 굉장한 비극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족은 발버둥치지만 시스템은 견고하고 부조리는 잔인하지요. 영화는 끝났어도 사실 해결된 갈등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임시로 뭉친 가족은 외부의 적이 사라지는 순간 다시 흩어지지만, 이 모든 갈등을 발생시킨 기저 원인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지요. 무엇보다 어떤 낯선 곳이 아니라 제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저는 우울한 희열을 느꼈습니다.

새삼스레 말하자면 [괴물]은 괴물의 등장 같은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며, 그 과정에서 어떤 부조리와 폭력과 착취가 발생하는지, 그리고 시스템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서로 어떤 고통을 주거나 받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모든 부조리와 폭력과 착취는 돌발 상황이 순수하게 만들어낸 재앙이 아니라 이미 시스템 안에 존재했거나, 적어도 원인과 여지가 충분해 언제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들이었지요. 갈등은 내제되어 있었고 괴물은 그저 스위치를 슬쩍 눌렀을 뿐입니다.

덧붙여, 후반부에 등장하는 시위 장면에서 경찰은 굉장히 온건하게 집회를 통제하려고 하더군요. 시민을 방패로 찍거나 몽둥이로 내려치는 전의경이 없어요. 욕설을 퍼붓지도 않고요. 무엇보다 아무도 연행되지 않습니다. 경찰은 그저 성난 군중을 몸으로 막고 있을 뿐입니다. 그 풍경이 새삼스럽고 신기해 보이는 제 처지가 참… 이것 또한 역군은이샷다.


[천하장사 마돈나(2006)] : 누군가를 놀림감으로 삼지 않으면서도 웃을 수 있고, 예의를 지키면서도 무거워지지 않습니다. 정말 껴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작품이에요. 무엇보다 동정이나 연민으로 빠지지 않는 사려 깊은 시선이 가장 큰 미덕입니다. 게다가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 특유의 생기발랄함은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이 세상에서, 이 더럽고 힘들고 치사한 세상에서, 멀쩡하게 버텨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저항이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에겐 세상은 분명 더 나아질 거라고, 잘못된 건 절대 우리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영화가 좀 더 많이 필요합니다. [천하장사 마돈나]처럼요.


[삼거리 극장(2006)] : 소외된 존재들이 잊혀지는 것에 대해 노래하는 난장판. 물론 무대가 극장이니 만큼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어둠이 내린 극장에서 환영을 불러내며 춤추는 귀신들이란 그 자체로 영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한국에서 뮤지컬 영화란 장르는 제대로 살아본 적도 없이 그냥 이렇게 죽은 걸까요?


[박쥐(2009)] : 이토록 가슴 저미게 사랑을 말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없습니다.


[불신지옥(2009)] : 제목에서 떠올릴 법한 인상과는 달리 개신교보다 더 깊은 지점에 있는, 한국 사회의 기복신앙에 대해 다루는 공포 영화. 한국 입봉 감독들이 만만하게 보고 덤볐다가 그 자리에 슬픈 무덤 하나만 덩그러니 생겨나곤 하는 장르인 호러에서 놀랄 만큼의 성취를 이뤄낸 작품입니다. 일단 무섭고 재밌어요.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그런 공포영화 찾기 어렵잖아요. 그것도 그냥 재밌고 무서운 게 아니라 두 시간 내내 관객을 휘어잡고 놓아줄 생각을 하질 않아요. 싸구려 충격 요법으로 대충 "우왁!!! 놀랐지?ㅋㅋㅋ" 겁주고 마는 게 아니라 어떻게 공포를 만들어내는지, 혹은 공포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는 영화입니다. 특히나 빛과 어둠, 소음과 정적에 대한 이해도는 공포영화 팬이 아니라는 감독의 말을 믿기가 힘들 지경이에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영리한 이야기꾼의 등장이란 참으로 반갑지 않습니까?


[파주(2009)] : [파주]를 여러 번 감상하면서 매번 놀라게 되는 건, 보는 각도를 조금만 달리하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바를 던져주는데다 결이 촘촘하고 겹겹이 깊어 헤아리기가 힘들다는 점입니다. 지극히 섬세한 영화인 동시에 굉장히 맹렬한 영화이고, 깜짝 놀랄 만큼 정치적인데다 허투로 다룰 생각 따윈 애초부터 없었다는 듯이 징글징글하지요.

[파주]는 굉장히 밀도가 높은 영화이고, 그래서 몇몇 정보들을 놓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정황을 파악하기 까다로운 영화는 아닙니다. 되려 결말까지 보고나면 굉장히 명확하고 간단한 이야기라는 느낌이지요(물론 그전까지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스터리처럼 보입니다만). 첫 인상을 품고 다시 봤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단순 정황보다 깊은 '어떤 것'(동기, 행위, 태도, 감정 등등)을 바라보려는 순간, 정황을 제외한 모든 것이 "이거다!"라고 말할 수 없게 모호해집니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윤곽을 잡기가 힘들어지죠. 흐릿하고 불분명하다고 해야 하나? 그보단 다른 시선에서 보면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표현이 적합하겠네요. 흡사 짙은 안개 속에 있는 피사체를 보는 것 같이.


[경계도시 2(2009)] : 재독철학자 송두율 교수가 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간첩 혐의를 받고 입국이 무기한 금지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37년 만에 입국이 가능해지고 그는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저는 아직 못 봤습니다만, 전편인 [경계도시]가 이 지점에서 끝난다고 하더군요.)

[경계도시 2]는 부러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한국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 너는 어느 편에 설 것인지 끈질기게 답을 요구하는 진보/보수의 이념 논쟁, 최대한 송두율 교수를 뜯어먹으려는 기자들의 후안무치한 모습을 낱낱이 보여줍니다. 카메라가 그들을 찾아다니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송두율 교수 주위에서 그를 둘러싼 풍경을 담아냈을 따름입니다.

하지만 [경계도시 2]를 논할 때 그 내용만큼이나 힘을 주어 언급하고 싶은 건 바로 카메라의 태도입니다. 이 영화는 찍는 이의 고뇌를 굳이 숨기지 않아요. 도리어 적극적으로 드러내지요. 대상과의 거리와 위치 설정에 대한 고민, 바라보고 찍는다는 행위가 대상에게 미칠 영향, 찍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혼란함과 회의감을 고스란히 담아냈어요.

말하자면 이 영화는 송두율 교수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동시에,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는 것에 대한 다큐멘터리까지 겸하고 있습니다. 헤어조크는 [그리즐리 맨(Grizzly Man)]에서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삽입하면서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견해와 자신의 견해를 평등하게 놓지요. [경계도시 2]는 카메라의 시선을 비롯한 모든 관점과 말을 회의하고 비판함으로써 하나의 희귀하고 값진 방법론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 때문에 [경계도시 2]는 시의적 의미를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를 획득합니다. 저는 내용과 형식은 분리될 수 없다는 해묵은 말을 [경계도시 2]를 보며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한동안 그 시의적 의미가 전혀 퇴색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굉장히 슬퍼집니다만.


[하하하(2009)] : 홍상수에 대한 향간의 오해와 억측, 혹은 홍상수가 영화를 만드는 방법과 태도에 대해 제가 부러 언급할 필요는 없지 싶습니다. 대신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네요.

홍상수의 영화를 처음 접했던 2009년을 잊지 못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봤습니다. 그전까지 들어오던 홍상수에 대한 여러 말, 말, 말을 떠올리며 술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찌질한 지식인 남성에 대한 풍자 코미디 영화이겠거니 성급한 예상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말하자면 [낮술] 같은 작품을 떠올렸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가 끝나고 나왔을 때 저는 흡사 공포 영화를 본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코미디? 영화가 몹시 살벌해서 단 한 순간도 웃을 수가 없었어요. 그 뒤론 홍상수의 영화는 무서워서 감히 손을 댈 엄두를 못 냈습니다. 볼 기회도 없었고요.

다음 해에 [하하하]가 개봉했습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어요. 얼떨결에 [씨네21] 홍상수 에디션을 구입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평론가들이 홍상수의 최고 걸작이라는 극찬을 쏟아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웃음이 가득하다는 홍보 문구에 마음에 동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1년이나 지났으니 홍상수가 어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지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동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하하하]를 보게 되었고, 덕분에 (저 혼자 쌓은) 홍상수에 대한 오해를 풀고 어떤 눈으로 그의 영화를 봐야할지 배우게 되었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처음 봤을 때 받았던 인상만 품고서 홍상수의 작품을 꺼려했다면 홍상수라는 감독을 영영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굉장히 늦게 받아들였을 겁니다. 말하자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제 홍상수 입문작인 셈이지요. (덧붙여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다시 봤을 때, 물론 여전히 살벌하긴 했지만 웃을 수 있었습니다)

계절도 겨울이라 그런지,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하하] 대신 [옥희의 영화]를 선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두 작품을 저울질해보면 자꾸만 [옥희의 영화] 쪽으로 마음이 기울거든요. 하지만 저에게 '홍상수에의 문'을 열어줬다는 사적 의미가 더 각별한 작품은 아무래도 [하하하]입니다.


딴소리

1. 가장 사적인 기준으로 꼽은 작품은 [하하하]인 듯 싶군요.

2. 많은 작품이 후보에 올랐고 [가족의 탄생], [가루지기], [소름], [사랑니], [지구를 지켜라] 같은 작품도 있었습니다만, 가장 최후까지 고민한 건 [이층의 악당]입니다.

3. 보셔서 아시겠지만 2006년작과 2009년작만 있습니다. 의도한 건 아닙니다.

4. 전 아무래도 긴 글 하나 쓰는 것보다 (어중간하게) 짧은 글 여러 개 쓰는 게 더 힘드네요. 책 읽을 때도 장편보다 단편집을 더 느리게 읽거든요.
by 파인로 | 2011/01/16 21:03 | 영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5)
2008년에 출간된 해외 장르문학
작년 4월에(벌써 그렇게 되었다니) 올린 글, "올해 출간되는/출간된 해외 장르문학"은 여러모로 나에게 오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애쉬블레스 님, happysf 님, 레이나 님이 제각각 다른 곳에 올린(설마 세 분이 모의해서 "올해 출간될 해외 장르문학 목록을 각자의 아지트에 올리자."라고 합의를 봤을 리는 없겠지?) 해외 장르문학 번역 출간 소식은 참으로 기쁜 것이었고, 그 즐거움이 저 글을 단숨에 쓰게 만든 원동력을 제공했다. 하지만 쓰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후회감 혹은 패배감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 '출간 예정'인 작품은 언젠가는 '출간 완료'로 바뀌기 마련이다. 예정작 중 하나라도 '예정이었던' 작품이 되는 순간, 저 글은 순식간에 과거의 유산이자 구닥다리 딱지를 달고 마는 것이다. 게다가 목록에 없다가 갑툭튀해서 출간되는 작품도 얼마나 얼마나 많은데. 당연한 이치고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예상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금쪽같은 정보를 한 곳에 모아서 글을 쓴다는 즐거움에 사로잡혀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고 말았다. 나의 경솔함은 결국 내게 부메랑처럼 돌아왔고 나는 거의 짐짝을 떠안은 심정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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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로 | 2009/01/21 07:19 | 장르문학 애호기 | 트랙백 | 덧글(12)
테드 창에 관한 소고: 인터뷰
만약 1990년으로 돌아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23살의 직장인이 최연소로 네뷸러상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데뷔할 거라고 말한다면 SF 팬덤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게다가 그 작가가 20년 가까이 지나도록 고작 10편의 작품 밖에 발표하지 않았고 그 중 두 편은 엽편(conte)이며 장편은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작가가 평생에 걸쳐 하나 받을까 말까한 상을 죄다 휩쓸고, 심지어 [NATURE](그렇다, 필자는 [Amazing Stories] 같은 '시시껄렁한' 잡지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에 본인의 엽편을 수록하게 된다고(그것도 두 번이나) 말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필자에게 시시껄렁한 이야기 값으로 10센트 동전 열 개 정도는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이건 명백한 사실이다. 현대 SF의 최전선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한 천재 작가의 눈부신 행보이며 이제 갓 마흔을 넘긴 전성기 작가의 화려한 비행이다. 이제 SF 팬덤 사이에서 이 작가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이는 아마 죽은 이들 뿐일 것이다(어쩌면 저 세상에서도 이 작가에 관해 쑥덕거릴지 모를 일이다). 글을 써내려가는 지금도 믿기지 않는 충격, 곱씹을수록 전율이 흐르는 축복. 이것이 바로 테드 창이다.

이 글은 시애틀에서 만난 테드와의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이 지면을 빌려 이 인터뷰를 가능하게 해준 지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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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로 | 2008/10/26 15:21 | 장르문학 애호기 | 트랙백 | 덧글(23)
[어둠의 기사(The Dark Knight, 2008)] 관련 메모
*이 포스팅은 디시인사이드 다크 나이트 갤러리에 썼던 것을 다소 수정한 메모들을 모아둔 글입니다. 원래는 이 메모들을 참고삼아서 감상문을 써서 바로 올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들은 머릿속에서 미칠 듯이 부유하는데 비해 저의 필력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보니 일단 떠다니는 생각 중 몇몇 개를 잡아다 글로 써둔 걸 미리 올려둡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1) 감상문을 꼭 쓰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2) 저는 살아있고 영화도 잘 보고 있다는 소식이기도 하며 3) 그만큼 이 영화에 대한 저의 애정이 크다는 걸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압도적인 걸작에 대한 저의 정식 감상문은 언제 나올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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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로 | 2008/09/01 02:39 | 영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4)
[그가 내게 묻기를], 재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가 내게 묻기를]은 훌륭한 SF다. 고도로 발달된 시뮬레이션 테크놀로지의 산물인 '마야'를 주된 소재로 삼아 전개되는 이 소설은, SF가 아니고선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종류의 이야기다. 시작은 이렇다. 평소 마야에 관심이 있던 주인공 나라타는 음식점에서 우연히(과연?) 마야를 다루는 시뮬레이터 운샤를 만난다. 나라타는 그에게 마야에 대해 묻지만 그는 어쩐지 약간은 귀찮은 듯, 약간은 두려운 듯 경계한다. 이런 그의 태도에 화가 난 나라타가 집요하게 파고들어가자 운샤는 대뜸 창녀집을 가리키며 가장 불쌍한 여자애를 데리고 나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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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로 | 2008/07/02 16:27 | 책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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